최용신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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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 선생님은 자애로우면서도 엄격하셨으며 늘 앞서나가시는 분이셨습니다. -제자 이덕선

최용신

최용신 소개

최용신선생과 샘골교우

1930년대 샘골마을

샘골도 비록 수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나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수원역에서 수인선에 몸을 싣고 인천쪽으로 오십리쯤 달리면 일리(一里)라는 시골의 촌정거장에 내릴 수 있다. 여기서 되돌아 가까운 5리쯤 걸으면 적은 언덕아래 20호가 될락말락한 가난이 흐르는 촌이 곧 문제의 샘골(泉谷)이다.

1930년대 샘골마을 지도, 김우경

뒤 언덕에 올라서면 앞으로 바닷물 드나드는 포구가 멀리 보이며 주위에는 붉은 산이 눈에 띄기는 하나 제법 울창한 솔밭도 곳곳에 있어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근방에는 구룡동(九龍洞)ㆍ각곡(角谷)ㆍ이동(梨洞)ㆍ오목동(梧木洞)ㆍ후곡(後谷)들의 마을들이 둘러있다. 샘골은 아마 이 여러 마을 가운데에서도 제일 가난한 마을이 아닌가한다”(최용신, 1934,『여론』'농민의 하소연' 중에서) 1930년대 가난에 찌든 농촌마을은 바로 이곳이었다.

산미증식계획에 따른 극대화된 수탈로 농촌경제는 전면적인 붕괴 일보 직전이었다. 궁민구제(窮民救濟)를 위한 대대적인 토목사업 등은 이를 반증한다. ‘민둥산’과 대조를 이루는 거센 바닷바람은 황무지와 같은 쓸쓸함을 더해준다. 반월면 농가는 1,400여 호에 달하였다.

연간소득 150원 이하인 절대빈곤에 처한 농가는 910여 호였다. 1920년대 후반 선교사업으로 운영되던 샘골강습소마저도 폐쇄 직전에 봉착하는 등 활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농촌계몽운동

개미저축회(구우계) 회원과 최용신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농촌을 되살리기 위한 농촌계몽운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전개되었다. 야학ㆍ강연회ㆍ생활개선ㆍ근검저축 등을 통한 민족역량 강화는 주요한 실천사항이자 목표였다. 구호나 슬로건은 관변 주도에 의한 농촌진흥운동과 매우 유사하였으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농촌살리기’라는 자발적인 농촌계몽운동이었다.

수탈을 철저하게 은폐시킨 허구적인 관제 농촌운동과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식민지당국과 일정 부분 긴장관계를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

샘골강습소 운영

샘골에 도착한 최용신은 부임 초기부터 샘골예배당 부설인 샘골강습소 확대ㆍ개편에 착수하였다. 동네 유지들과 상의하여 신청한 강습소는 이듬해 5월 정식인가를 받았다. 강습생은 점점 늘어나 110여 명에 달하는 등 초만원을 이루었다.

최용신 샘골 거주지 (4칸 초가)

오전ㆍ오후ㆍ야간반 등으로 분반해도 지원자를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실에 들어오지 못한 청소년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배당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이는 ‘영원한 상록수’로서 최용신을 부각시키는 요인이었다. 일제 경찰의 철통같은 감시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은 우뚝 선 ‘불사조’ 같은 존재로서 각인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추석놀이

루씨여자보통학교 연극발표회

강습소 신축계획은 8월 한가위를 맞아 학부형위로회(일명 추석놀이)개최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예배당 마당에 모인 주민들은 독창ㆍ합창ㆍ춤ㆍ연극ㆍ연설이 끝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최용신 연설에 호응하여 즉석에서 천곡학원건축발기회도 조직되었다.

홍수득(洪壽得)ㆍ안종팔(安種八)ㆍ강치형(姜治馨)ㆍ황종연(黃鍾演)과 샘골부인저축계원, 일부 학부형 등은 주요 발기인이었다. 마을부인들은 그동안 저축한 300원 전액을 헌금할 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이 중 150원만 기부금으로 받기를 결정하였다. 이는 발기인들 모금활동을 더욱 분발시키는 요인이었다.

샘골강습소 신축

강습소 신축공사는 발기회 조직 5일 후에 착수하였다. 장소는 샘골 뒷동산 솔밭으로 소유주인 박용덕(朴容德)의 1,052평 기증으로 이루어졌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발적이었던 교사신축 참여는 공사 일정을 단축하는 등 급진전되었다. 한 달만인 10월 27일 정초식과 이듬해 1월 15일 낙성식 거행은 이를 반증한다.

샘골강습소 낙성식 기념 (1933년)

낙성식은 기념사, 건축비 사용경과보고, 학동들의 학예회 등 다양한 축하행사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최용신의 헌신적인 활동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존경심을 표시하였다. 단결심과 화목한 인간관계는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원천이었다. 이제 주민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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