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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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 선생님은 자애로우면서도 엄격하셨으며 늘 앞서나가시는 분이셨습니다. -제자 이덕선

최용신

최용신 소개

최용신 선생 학창시절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

1884년 조선정부로부터 의료와 교육에 한정된 선교윤허를 득한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근대교육이 보급ㆍ확산되는 계기를 맞았다. 근대 여성 교육 효시인 이화학당이 스크린튼 여사에 의해 1886년 세워진 것을 비롯하여, 서울의 배화여학당과 공옥여학교, 인천 영화여학당, 수원 삼일여학당 등이 여성교육 기관으로 세워져 근대 한국을 열기 시작했다.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 전경

루씨여학교도 이러한 취지에 따라 1903년 설립된 이래로 원산지역을 대표하는 여성교육기관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다양한 교내외 활동은 학생들로 하여금 식민교육이 지닌 모순을 일깨웠다.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동맹휴교나 원산총파업에 대한 지원 등은 이를 반증한다. 최용신도 재학 중 두남교회와 두남구락부를 중심으로 교외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당시 4년제인 여자고등보통학교 주당 수업시간은 표와 같다.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는 설립 목적상 여기에 성경을 추가하였다.

학년 수신 일본어 한국어 외국어 역사ㆍ
지리
수학 이과 도화 가사 재봉 음악 체조
1학년 1 6 3 3 3 2 2 1 - 4 2 3 30
2학년 1 6 3 3 3 2 2 1 - 4 2 3 30
3학년 1 5 2 3 2 3 3 1 2 4 2 3 30
4학년 1 5 2 3 2 3 3 - 4 4 - 3 30

협성여자신학교

협성여자신학교 (현 감리고신학대학교) 전경

협성여자신학교는 1928년 최용신의 입학 당시 여성만의 신학 교육기관이었다. 1929년에는 감리교 협성 남녀신학교의 임시 통합 운영계획에 따라 운영되다가 1931년 공식 통합되었다. 이렇듯 최용신은 여학교로 입학하여 남녀 임시 공학과 공식적 남녀공학의 3학교 체제를 경험하였다.

최용신은 대학 시절 철저한 민족주의 신학교육을 받았다. 스승인 황애덕은 3ㆍ1혁명 당시 대한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애국자였다. 그녀는 콜럼비아 대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신학생들이 졸업하고 농촌에 가려하지 않으니 와서 그들을 계몽시켜 주시오”란 채핀 교장의 서신을 받고, 입국하여 ‘농촌사업지도교육과’를 신설하였다.

교본은 조민형이 쓴 『조선농촌구제책』을 사용했고, 교수는 현대 소설가 전영택과 조병옥 박사, 3ㆍ1혁명 33인 감리교 대표중의 1인인 김창준 등이다.

고베여자신학교 사회사업학과

샘골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장기적인 계획에 의한 농촌계몽운동 필요성을 더욱 절감시켰다. 1934년 3월 도일과 동시에 그녀는 고베(神戶)여자신학교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은 향학열로 이어지는 등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유학 중 교내 잡지에 투고한 기고문은 미래에 대한 희망찬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장래 목적은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부녀자ㆍ어린이ㆍ농민 등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고자 함이었다. 큰오빠 시풍과 재회는 기쁨을 배가시켰다. 유학 중 각기병으로 부득불 학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그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었다.

최용신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샘골로 달려가 이전처럼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는 등 선구자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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