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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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 선생님은 자애로우면서도 엄격하셨으며 늘 앞서나가시는 분이셨습니다. -제자 이덕선

최용신

최용신 소개

최용신 선생

최 용 신(崔容信) 1909. 8. 12~1935. 1. 23

함남 덕원(德原) 사람이며 식민지 수탈에 의해 피폐된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그가 농촌사업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1928년 함남 원산의 루씨여고보(樓氏女高普)를 졸업하고 협성여자신학교(協成女子神學校)에 재학하면서부터였다.

문화관광부 문화인물 선정 포스터 (2001년)

이 때 그는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는 생각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9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 총회 때 협성학생기독교청년회의 대표로 본격적인 YWCA의 농촌계몽사업에 참가하였다.

그는 1929년에는 황해도 수안(遂安)과 강원도 포항에 파견되어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최용신은 1931년 10월 YWCA 파견교사로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반월면(半月面) 샘골(천곡; 泉谷)에 파견되었다.

그는 예배당을 빌려 한글ㆍ산술ㆍ재봉ㆍ수예ㆍ가사ㆍ노래공부ㆍ성경공부 등의 학습을 시작하였다. 헌신적 노력으로 현지 주민의 이해를 얻어낼 수 있었고, 어려운 중에도 학원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YWCA와 현지 유지의 기금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YMCA회의록 (1922년 ~ 1950년)

그리하여 1932년 5월 정식으로 강습소 인가를 받았으며, 동년 8월에는 천곡학원(泉谷學院) 건축발기회를 조직하고 그곳 유지와 YWCA의 보조로 학원 건축을 시작하여 1933년 1월 15일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1934년부터 YWCA의 보조금이 끊어지고 학원의 운영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다방면의 노력을 강구하던 중 지나친 과로로 사망하게 되었다(1935. 1.23) 그의 농촌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행적은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常綠樹)』에서 실제화 되어 농촌운동의 귀감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 13권, 국가보훈처,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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